사람을 살리는 직업, 그러나 자신을 살리지 못했던 정상훈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쓴 정상훈은 의사이다. 그러나 평범한 의사는 아니었다. 희망의 불꽃이 꺼져가는 사람들을 살려낸 대단한 업적을 가졌지만, 정작 [정상훈] 의사는 자신의 생명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말을 듣고 나면 의문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라고 칭송받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까지 졸업한 엘리트 출신이면서, 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일까.
결국 그는 내가 왜 살아야만 하는지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충분히 뛰어난 급여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돈 잘 버는 의사가 될 수 없었다.
한 때 그렇게 열정을 쏟아부었던 일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원만했던 인간관계마저 엉망이 되어버렸으며, [정상훈] 의사는 자신이 왜 슬픈지도 모른 체, 슬픔에 잠겨 살아야 했다.
사랑하는 아내도, 사랑하는 어린 자식의 존재도 그의 마음을 붙잡지 못했다. 이미 벼랑 끝에 몰려있었던 그에겐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정상훈 의사는 "국경 없는 의사회"라는 단체에 참여해 전 세계의 의료봉사를 다니기로 하였다. 사명이나 동정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또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접하기 위해 국경 없는 의사회에 뛰어들었다.
국경 없는 의사회
[정상훈] 의사가 집필한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는 실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수필이다.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찾아온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계기로 국경 없는 의사회에 참여하게 되며 겪었던 모든 일화들을 일기처럼, 때로는 회상하는 것처럼 기록해 두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그 현장 속에서 작가가 느꼈던 심리적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울한 사람과 우울증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꼈다.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는 허무감. 공허함. 나 역시 느껴보았던 기억이 있지만,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험들이기에 [정상훈] 의사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우울증이란 정말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오기도 하는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만, 국경 없는 의사회는 만능 단체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내에서도 몇 번이고 반복되기에 더 잘 와닿게 된다. 심지어 TV나 언론에서나 접하던 '국경 없는 의사회'의 절박한 현실이 얼마나 크게 와닿는지 책을 읽는 나까지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의료봉사를 위해 도착했던 아르메니아, 레바논 난민촌의 의사들은 그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처럼 완벽한 의료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인원과 시간은 철저히 모자라기만 했다.
그러나 동시에 몸도 마음도 무너진 [정상훈] 의사가 몸을 던져가며 최선을 다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했던 의지는 분명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도 사람이었기에 사람을 살리려 최선을 다한 결과가 도리어 나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의사로서 베테랑이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과연 나는 그와 똑같이 할 수 있었을까?
당시의 상황을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속에서 담담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괜히 내가 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다 문득, 나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내가 만약 정상훈이라는 사람이었다면, 그와 똑같이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의사라 하더라도 '날 것 그 자체의 죽음'이 존재하는 곳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무서운 상황이다.
죽음 앞에서 삶을 찾아낸 남자
그러나 [정상훈] 의사는 그토록 원하던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가 아르메니아 빈민촌과 레바논 난민촌을 시작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에볼라 바이러스'가 들끓는 시에라리온에 들어가 숱한 죽음 앞에서 깨달은 것은 결국 진정한 삶의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는 '죽음' 앞에서 '삶'을 찾아낸 것이었다. 아마도 온몸으로 깨달은 절절한 삶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에볼라 바이러스'전문 의사까지 되면서 다시 예전의 행복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유명한 언론 매체가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보통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거라고 생각들 합니다. 하지만 정상훈 의사님은 다르셨습니다. 왜 그렇게 안 하십니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뭔가 멋진 답변을 하고 싶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저를 만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의사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한다. 동시에 자신을 치료하기도 한다.
간절한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그렇기에 환자들은 의사에게 감사해한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읽고 나서 약간의 생각이 변했다.
나는 [정상훈] 의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처럼 인간적이고, 따뜻한 진짜 의사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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